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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 알베르빌, 김기훈이 만든 한국 동계올림픽 첫 금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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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아라
2026-10-14 16:45
알베르빌 1992, 한국의 첫 금메달

1992년 2월, 프랑스 알베르빌.

지금은 동계올림픽이 열리면 한국의 쇼트트랙 메달 소식을 자연스럽게 기다린다. 하지만 1992년 이전까지 상황은 전혀 달랐다. 한국은 1948년 생모리츠 동계올림픽에 처음 참가한 뒤 40년 넘게 겨울올림픽에서 단 하나의 메달도 따지 못했다.

그 기록이 알베르빌에서 한꺼번에 바뀌었다.

먼저 스피드스케이팅에서 한국의 첫 동계올림픽 메달이 나왔다. 그리고 불과 이틀 뒤 쇼트트랙에서 첫 금메달까지 등장했다.

그 중심에 김기훈이 있었다.

44년 만에 처음 나온 동계올림픽 메달

한국이 처음 동계올림픽 시상대에 오른 선수는 김기훈이 아니었다.

1992년 2월 18일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1000m에 출전한 김윤만이 1분14초86을 기록했다. 금메달을 차지한 독일의 올라프 진케와 차이는 불과 0.01초였다.

은메달.

1948년 생모리츠 대회부터 계산하면 44년 만에 나온 한국의 첫 동계올림픽 메달이었다.

0.01초 차이 때문에 금메달을 놓쳤다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당시 한국 동계스포츠에서 은메달 자체가 새로운 역사였다. 올림픽 겨울 종목에서도 한국 선수가 세계 정상권에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결과로 보여준 순간이었다.

요즘 올림픽과 주요 스포츠중계를 보다 보면 스피드스케이팅이나 쇼트트랙에서 한국 선수가 메달 경쟁을 벌이는 장면이 익숙하지만, 그 출발점은 지금처럼 당연하지 않았다.

쇼트트랙이 정식 종목이 된 첫 대회

알베르빌은 한국 쇼트트랙 역사에서도 중요한 대회였다.

쇼트트랙은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에서 시범종목으로 열렸고, 1992년 알베르빌에서 처음 정식 메달 종목이 됐다.

김기훈은 이미 캘거리에서 이름을 알린 선수였다. 당시 시범종목 남자 1500m에서 우승했고, 이후 세계선수권과 국제대회에서도 정상급 성적을 쌓았다.

그래도 시범종목 기록은 공식 올림픽 메달로 인정되지 않았다.

알베르빌에서는 달랐다.

실제로 올림픽 메달을 걸고 경기를 치렀다.

남자 쇼트트랙에서는 1000m 개인전과 5000m 계주가 정식 종목으로 편성됐다.

한국 입장에서는 쇼트트랙이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첫 순간부터 메달을 노릴 수 있는 전력을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1000m 결승에 한국 선수 두 명

1992년 2월 20일.

남자 쇼트트랙 1000m 결승.

한국에서는 김기훈과 이준호가 함께 결승에 올라갔다. 캐나다의 프레데릭 블랙번, 뉴질랜드의 마이크 맥밀런까지 총 네 명이 메달을 놓고 달렸다.

김기훈은 처음부터 무리하게 선두를 빼앗으려 하지 않았다.

쇼트트랙은 단순히 가장 빠른 선수가 이기는 종목이 아니다. 좁은 트랙에서 언제 앞으로 나갈 것인지, 어느 코스를 선택할 것인지가 기록만큼 중요하다.

김기훈은 자신의 장점인 코너 주행과 경기 운영을 활용했다.

경기가 후반으로 갈수록 앞으로 움직였다.

마지막에는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1분30초76

전광판에 기록이 나왔다.

1분30초76.

세계신기록이었다.

캐나다 블랙번이 1분31초11로 2위, 한국의 이준호가 1분31초16으로 3위에 올랐다.

금메달 김기훈.

동메달 이준호.

한국 선수 두 명이 동시에 시상대에 섰다.

그리고 김기훈의 금메달은 대한민국 동계올림픽 역사상 첫 번째 금메달이 됐다.

김윤만이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첫 메달을 만들어낸 지 불과 이틀 뒤였다.

44년 동안 없었던 동계올림픽 메달이 며칠 사이 금·은·동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국 쇼트트랙의 첫 번째 금메달

당시에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김기훈의 금메달이 이후 수십 년 동안 이어질 한국 쇼트트랙 역사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한국은 이후 동계올림픽 때마다 쇼트트랙에서 수많은 챔피언을 배출했다.

채지훈, 전이경, 김동성, 안현수, 진선유, 이정수, 박승희, 최민정 등 시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선수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 모든 공식 올림픽 금메달 기록의 가장 앞에는 김기훈의 이름이 있다.

1992년 알베르빌 남자 1000m.

한국 쇼트트랙의 첫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아직 한 경기가 남아 있었다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땄다고 김기훈의 알베르빌 대회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2월 22일 남자 5000m 계주가 남아 있었다.

한국 대표팀은 김기훈, 이준호, 송재근, 모지수로 구성됐다.

상대는 캐나다, 일본, 뉴질랜드.

특히 캐나다는 개인전에서도 강한 선수들이 있었고 계주에서도 우승 경쟁이 가능한 팀이었다.

계주에서는 개인전과 또 다른 변수가 생긴다.

선수 네 명이 번갈아 들어가기 때문에 교대가 조금만 어긋나도 순위가 크게 바뀐다. 한 선수가 넘어지면 앞선 수십 바퀴의 경기 내용도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

한국과 캐나다는 마지막까지 떨어지지 않았다.

마지막 주자 김기훈

레이스 후반.

캐나다가 근소하게 앞선 상태에서 마지막 승부가 시작됐다.

한국의 마지막 주자는 김기훈.

1000m 금메달을 따낸 지 이틀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김기훈은 앞서 달리는 캐나다 선수를 계속 따라갔다. 무리하게 바깥쪽으로 크게 돌지 않고 추월할 순간을 기다렸다.

마지막 바퀴.

결승선이 가까워졌다.

한국은 여전히 캐나다보다 뒤에 있었다.

금메달이 캐나다로 가는 것처럼 보였다.

마지막 15m

결승선을 약 15m 남겨놓은 지점.

김기훈이 움직였다.

안쪽 공간을 파고들었다.

캐나다 선수도 속도를 올렸다.

두 선수가 거의 나란히 결승선을 향했다.

마지막 순간 김기훈이 스케이트 날을 앞으로 내밀었다.

결승선 통과.

누가 이겼는지 육안으로 바로 판단하기 어려울 만큼 차이가 작았다.

기록이 확인됐다.

한국 7분14초02.

캐나다 7분14초06.

차이는 0.04초.

한국의 금메달이었다.

개인전 금메달에 이어 계주까지

김기훈은 알베르빌에서 금메달 두 개를 따냈다.

1000m 개인전.

5000m 계주.

이준호 역시 1000m 동메달에 이어 계주 금메달을 추가했다.

송재근과 모지수도 계주 우승으로 올림픽 챔피언이 됐다.

한국 쇼트트랙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첫 올림픽부터 남자 종목 두 개를 모두 가져갔다.

당시 스포츠뉴스와 국제대회 기록을 시대별로 돌아보면 알베르빌 이전과 이후 한국 동계스포츠의 분위기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 수 있다.

메달 하나를 기대하던 단계에서 특정 종목의 우승을 기대하는 나라로 바뀌기 시작했다.

2금 1은 1동

1992 알베르빌에서 한국이 기록한 최종 메달은 네 개였다.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

김기훈이 쇼트트랙에서 금메달 두 개를 가져왔다.

김윤만이 스피드스케이팅 1000m 은메달.

이준호가 쇼트트랙 1000m 동메달을 기록했다.

한국이 동계올림픽에 참가하기 시작한 뒤 처음으로 메달 집계표에 이름을 올린 대회였다.

그런데 한 개도 아니었다.

첫 메달과 첫 금메달, 그리고 두 번째 금메달까지 모두 같은 대회에서 나왔다.

여름 스포츠와 달랐던 겨울

당시 한국은 하계올림픽에서는 이미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1984년 LA 올림픽에서 금메달 6개를 기록했고,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는 금메달 12개로 종합 4위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겨울은 다른 세계였다.

빙상장을 비롯한 기반 시설도 부족했고, 겨울 스포츠를 전문적으로 접하는 선수층도 두껍지 않았다.

그래서 알베르빌의 네 개 메달은 단순히 한 대회의 좋은 성적 이상으로 받아들여졌다.

한국도 동계올림픽에서 경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 확인한 대회였다.

한국 쇼트트랙의 방식

1992년 한국 선수들의 강점 가운데 하나는 코너였다.

쇼트트랙은 한 바퀴가 짧다. 직선보다 코너를 얼마나 빠르고 안정적으로 통과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김기훈은 코너 진입과 탈출에서 속도를 유지하는 능력이 뛰어난 선수로 평가받았다.

계주 마지막에 스케이트 날을 앞으로 밀어 결승선을 먼저 통과하는 모습도 이후 한국 선수들이 자주 보여준 장면 가운데 하나가 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훈련 방식과 장비, 경기 규정은 계속 바뀌었다.

그래도 좁은 공간에서 추월 기회를 만들고 마지막 한 바퀴에서 승부하는 한국 쇼트트랙의 이미지는 이 시기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2년 뒤 다시 금메달

김기훈의 이야기는 알베르빌에서 끝나지 않았다.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김기훈은 다시 남자 1000m에 출전했다.

결과는 금메달.

올림픽 2연패였다.

알베르빌에서 한국 동계올림픽 첫 금메달을 만든 뒤 다음 대회에서도 같은 종목 정상을 지켰다.

한 번의 이변이 아니었다는 것을 다시 보여준 셈이었다.

이후 한국 쇼트트랙은 남녀 여러 종목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계속 쌓아갔다.

1992년 2월

알베르빌에서 한국 스포츠 역사는 며칠 사이 빠르게 바뀌었다.

2월 18일.

김윤만 스피드스케이팅 1000m 은메달.

한국 동계올림픽 첫 메달.

2월 20일.

김기훈 쇼트트랙 1000m 금메달.

1분30초76 세계신기록.

한국 동계올림픽 첫 금메달.

이준호 동메달.

2월 22일.

김기훈, 이준호, 송재근, 모지수.

남자 5000m 계주 금메달.

7분14초02.

캐나다와 0.04초 차.

44년의 기다림이 끝난 대회

한국은 1948년 생모리츠에서 처음 동계올림픽에 출전했다.

그 뒤 오랫동안 메달이 없었다.

1992년 알베르빌에서 그 시간이 끝났다.

첫 메달은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나왔다.

첫 금메달은 쇼트트랙에서 나왔다.

그리고 쇼트트랙 계주에서 금메달 하나를 더 가져왔다.

당시 경기 장면을 스포츠 하이라이트로 다시 보면 지금의 쇼트트랙과 장비나 경기 운영에서 차이가 있지만, 마지막 순간의 긴장감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5000m 계주 마지막 직선은 결과를 알고 봐도 승자를 바로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0.04초.

그 작은 차이로 한국의 두 번째 동계올림픽 금메달이 만들어졌다.

오늘날 한국을 쇼트트랙 강국이라고 부르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 기록에도 첫 페이지가 있다.

1992년 알베르빌.

그리고 가장 먼저 금메달을 목에 건 김기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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