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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런던 올림픽, 승부차기와 한일전으로 만든 한국 축구 첫 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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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철통
2026-10-13 09:20
2012 런던 올림픽, 한국 축구의 첫 메달

2012년 8월 11일 새벽, 영국 카디프 밀레니엄 스타디움.

한국과 일본이 런던 올림픽 남자축구 동메달을 놓고 만났다.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한국 축구에는 아직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올림픽 메달이 걸려 있었다.

박주영이 전반에 선제골을 넣었다.

후반에는 주장 구자철이 한 골을 더했다.

2-0.

종료 휘슬이 울리면서 한국 남자축구 역사상 첫 올림픽 메달이 확정됐다.

하지만 런던에서의 이야기는 일본전 한 경기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조별리그부터 개최국 영국과의 승부차기, 브라질과의 준결승까지 한 달 가까이 이어진 과정이 있었다.

홍명보 감독과 18명의 선수

당시 올림픽대표팀 감독은 홍명보였다.

대표팀은 23세 이하 선수를 중심으로 구성됐고, 규정에 따라 세 명의 와일드카드를 사용할 수 있었다. 홍명보 감독이 선택한 와일드카드는 골키퍼 정성룡, 수비수 김창수, 공격수 박주영이었다.

기존 세대의 중심에는 구자철, 기성용, 김보경, 지동원, 박종우, 김영권 등이 있었다.

2009년 FIFA U-20 월드컵에서 함께 뛰었던 선수들도 적지 않았다. 몇 년 동안 연령별 대표팀을 거치며 호흡을 맞춘 선수들이 올림픽 무대까지 이어진 셈이었다.

지금 축구를 포함한 스포츠중계를 보면 대표팀이 짧은 소집 기간에 조직력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런던 대표팀은 서로를 처음 만난 선수들을 급하게 모은 팀과는 조금 달랐다.

몇 년 동안 같은 세대에서 뛰어온 시간이 있었다.

첫 경기 멕시코전

조별리그 첫 상대는 멕시코였다.

한국은 경기를 주도하는 시간도 있었지만 끝내 골을 넣지 못했다.

0-0.

승점 1점.

결과만 보면 화려한 출발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중에 보면 이 멕시코가 대회 결승에서 브라질을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한국이 첫 경기부터 만난 상대가 결국 그 대회 챔피언이 된 것이다.

올림픽 같은 단기대회에서는 첫 경기에서 패하지 않는 것도 중요했다.

한국은 승리를 가져오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흔들리지 않은 상태로 두 번째 경기에 들어갈 수 있었다.

스위스전에서 나온 첫 승

두 번째 상대는 스위스였다.

이번에는 한국이 결과를 만들었다.

후반 박주영이 선제골을 넣었다. 스위스가 곧바로 동점을 만들었지만 한국이 다시 공격했고, 김보경이 결승골을 기록했다.

2-1.

대회 첫 승이었다.

조별리그 두 경기를 마친 한국은 1승 1무.

16강이라는 단계가 없는 올림픽 축구에서는 조 2위 안에 들어야 곧바로 8강이었다.

마지막 상대는 가봉.

한국은 가봉과 0-0으로 비겼다.

조별리그 최종 성적은 1승 2무.

무패로 8강 진출을 확정했다.

8강 상대는 개최국 영국

대진표에 올라온 이름은 영국이었다.

평소 국제축구에서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가 각각 대표팀을 운영하지만 올림픽에서는 개최국 영국 단일팀이 출전했다.

선수 명단도 만만치 않았다.

라이언 긱스가 주장 완장을 찼고, 대니얼 스터리지, 애런 램지, 톰 클레버리 등이 있었다.

장소는 카디프 밀레니엄 스타디움.

영국 홈이었다.

한국 축구가 올림픽 4강에 올라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 경기에서 이기면 처음이었다.

지동원의 왼발

전반 29분.

지동원이 페널티 지역 바깥에서 왼발 슈팅을 때렸다.

공이 골문으로 들어갔다.

한국 1-0.

좋은 출발이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전반 36분 한국이 페널티킥을 허용했고 램지가 성공했다.

1-1.

얼마 뒤 영국이 다시 페널티킥을 얻었다.

또 램지가 나왔다.

이번에는 정성룡이 막았다.

한국이 다시 살아났다.

그러나 정성룡은 이후 상대 선수와 충돌하면서 부상을 입었다.

결국 이범영이 교체로 들어갔다.

올림픽 8강에서 주전 골키퍼가 빠지고 후보 골키퍼가 들어가는 상황이었다.

120분으로도 끝나지 않았다

후반에도 승부는 나지 않았다.

1-1.

연장전으로 들어갔다.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졌지만 어느 쪽도 골을 만들지 못했다.

120분 종료.

승부차기.

개최국 홈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국 선수들이 한 명씩 공을 들었다.

양 팀의 첫 네 명은 모두 성공했다.

한국도 구자철, 백성동, 황석호, 박종우가 차례로 넣었다.

영국의 다섯 번째 키커는 스터리지.

이범영이 방향을 읽었다.

선방.

이제 한국이 마지막 한 번만 성공하면 끝이었다.

기성용의 다섯 번째 킥

한국의 마지막 키커는 기성용이었다.

기성용이 공을 놓았다.

골키퍼를 확인했다.

오른발로 찼다.

골.

승부차기 5-4.

경기 종료.

한국이 올림픽 남자축구 사상 처음으로 4강에 올라갔다.

선수들은 이범영과 기성용 쪽으로 몰려갔다.

한국 축구 역사와 주요 기록을 돌아보면 런던 대회의 가장 중요한 장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승부차기다.

메달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한국 축구가 올림픽에서 처음 밟는 단계까지 올라온 순간이었다.

브라질은 강했다

준결승 상대는 브라질.

장소는 맨체스터 올드 트래퍼드였다.

당시 브라질 올림픽대표팀에는 네이마르, 마르셀루, 티아구 시우바, 헐크, 오스카르, 레안드루 다미앙 등이 있었다.

한국은 전반 초반까지 버텼다.

하지만 브라질이 먼저 골을 넣었다.

후반에도 레안드루 다미앙이 추가골을 기록하면서 점수 차가 벌어졌다.

최종 스코어 0-3.

결승 진출 실패.

선수들이 바라던 금메달 또는 은메달 가능성은 사라졌다.

그래도 대회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한 경기가 남아 있었다.

동메달 결정전.

상대는 일본이었다.

마지막 경기가 한일전

일본 역시 준결승에서 멕시코에 패했다.

그래서 동메달을 놓고 한국과 일본이 카디프에서 만나게 됐다.

올림픽 메달이 걸린 한일전.

한국이 이기면 축구 역사상 첫 올림픽 메달이었다.

일본 역시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이후 오랜만의 남자축구 메달을 노리고 있었다.

서로에게 양보할 이유가 없는 경기였다.

한국은 영국과 120분을 치르고 브라질전까지 소화한 상태였다.

체력적으로 편할 수 없었다.

그래도 경기 초반부터 수비라인을 내리고 버티기만 하지는 않았다.

박주영의 돌파

전반 38분.

박주영이 전방에서 공을 잡았다.

주변에는 일본 수비수들이 있었다.

박주영이 직접 공을 몰기 시작했다.

한 명을 지나갔다.

다시 방향을 바꿨다.

수비 사이를 뚫고 페널티 지역으로 들어갔다.

오른발 슈팅.

골.

1-0.

한국이 먼저 앞섰다.

이번 대회 와일드카드 공격수로 선발됐던 박주영에게 가장 필요했던 순간의 득점이었다.

조별리그 스위스전에서도 골을 넣었지만 일본전 선제골은 무게가 달랐다.

이제 한국은 한 골의 리드를 지키면서 추가골까지 노릴 수 있었다.

구자철의 두 번째 골

후반 12분.

한국 진영에서 긴 패스가 앞으로 넘어왔다.

박주영이 머리로 공을 연결했다.

구자철이 수비 뒤로 움직였다.

공을 잡았다.

일본 수비가 따라붙었다.

구자철이 오른발로 슈팅했다.

골.

2-0.

주장이 직접 점수 차를 두 골로 벌렸다.

일본에게는 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한국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기성용과 박종우가 중원에서 버텼고 수비진이 일본의 공격을 끊었다.

골문에는 정성룡이 다시 돌아와 있었다.

시간이 계속 줄었다.

종료 휘슬

후반 45분이 지났다.

추가시간.

한국 선수들은 마지막까지 일본의 공격을 막았다.

주심이 휘슬을 불었다.

한국 2.
일본 0.

경기 종료.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서로를 끌어안았다.

홍명보 감독도 코칭스태프와 함께 선수들을 맞았다.

한국 남자축구의 첫 올림픽 메달.

동메달이었다.

1948년부터 이어진 올림픽 도전

한국 축구의 올림픽 역사는 런던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대한민국 이름으로 처음 출전한 올림픽이 1948년 런던 대회였다.

공교롭게도 첫 출전과 첫 메달이 모두 영국에서 열렸다.

그 사이 수많은 대표팀이 올림픽에 도전했다.

1988년에는 서울에서 대회가 열렸다.

2000년 시드니에서는 조별리그에서 2승을 거두고도 골득실 때문에 탈락했다.

2004년 아테네에서는 8강까지 올라갔지만 파라과이에 2-3으로 패했다.

메달과는 계속 거리가 있었다.

2012년에야 처음 마지막 세 팀 안에 들어갔다.

18명의 선수에게 남은 동메달

런던 대표팀에는 이후 한국 축구의 중심이 된 선수들이 많았다.

기성용.

구자철.

김영권.

김보경.

지동원.

박주영.

윤석영.

박종우.

정성룡.

이범영.

당시에는 올림픽대표팀 선수였지만 이후 월드컵과 아시안컵, 유럽 리그 등 여러 무대에서 다시 이름을 보게 됐다.

런던 동메달은 한 세대가 함께 만든 첫 결과였다.

그리고 한 선수가 모든 경기를 해결한 대회도 아니었다.

스위스전에서는 박주영과 김보경.

영국전에서는 지동원과 이범영, 기성용.

일본전에서는 박주영과 구자철.

경기마다 다른 선수가 앞에 나왔다.

런던에서 카디프까지

2012년 한국의 올림픽 결과를 순서대로 보면 이렇다.

멕시코 0-0.

스위스 2-1.

가봉 0-0.

조별리그 1승 2무.

8강 영국 1-1.

승부차기 5-4 승.

준결승 브라질 0-3.

동메달 결정전 일본 2-0.

최종 순위 3위.

당시 경기들을 스포츠 하이라이트로 다시 보면 영국전과 일본전의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

영국전은 120분과 승부차기까지 버텨야 했다.

일본전에서는 두 골을 먼저 만들고 마지막까지 리드를 지켰다.

메달까지 가는 방식도 한 가지가 아니었다.

2012년 8월 11일

전반 38분 박주영.

후반 12분 구자철.

한국 2.
일본 0.

올림픽 동메달.

한국 축구 역사상 첫 올림픽 메달.

런던으로 출국할 때만 해도 이 팀이 어느 단계까지 올라갈지는 알 수 없었다.

조별리그에서는 두 차례 0-0 무승부도 있었다.

8강에서는 골키퍼가 경기 도중 교체됐다.

승부차기까지 갔다.

준결승에서는 브라질에 세 골 차로 졌다.

그래도 마지막 한 경기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 경기에서 박주영과 구자철이 골을 넣었다.

한국 축구가 수십 년 동안 기다렸던 첫 올림픽 메달은 그렇게 카디프에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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