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6 멕시코 월드컵, 마라도나의 7경기와 아르헨티나의 두 번째 별

1986년 6월 29일, 멕시코시티 아스테카 스타디움.
아르헨티나와 서독의 월드컵 결승이 열렸다. 아르헨티나는 1978년 자국 대회 이후 두 번째 우승에 도전했고, 서독은 1954년과 1974년에 이어 세 번째 정상을 노리고 있었다.
경기 전 가장 많은 시선이 향한 선수는 디에고 마라도나였다. 당시 25세였던 그는 주장 완장을 차고 아르헨티나의 공격을 이끌고 있었다.
하지만 1986년 월드컵이 특별하게 남은 이유는 결승 한 경기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조별리그부터 잉글랜드와의 8강, 벨기에와의 준결승, 서독과의 결승까지 마라도나가 남긴 장면들이 한 대회 안에 이어졌다.
조별리그부터 공격의 중심은 마라도나였다
아르헨티나의 첫 상대는 대한민국이었다.
아르헨티나는 3-1로 승리했다. 마라도나는 직접 골을 넣지는 않았지만 공격 전개의 중심에 있었고, 상대 수비는 경기 내내 그를 강하게 견제했다.
두 번째 상대는 디펜딩 챔피언 이탈리아였다.
이탈리아가 알레산드로 알토벨리의 페널티킥으로 먼저 앞섰지만 마라도나가 동점골을 넣었다. 최종 스코어 1-1.
불가리아와의 마지막 조별리그에서는 2-0으로 이겼다.
2승 1무.
아르헨티나는 조 1위로 16강에 올라갔다.
지금 월드컵을 포함한 스포츠중계를 보면 공격형 미드필더와 포워드의 역할이 세분화돼 있지만, 당시 마라도나는 특정 위치에만 머무는 선수가 아니었다. 중원까지 내려와 공을 받고 직접 전진했고, 상대 수비가 붙으면 동료에게 공간을 만들어줬다.
우루과이전은 한 골로 끝났다
16강 상대는 우루과이였다.
남미 팀끼리 만난 경기답게 몸싸움이 많았고 점수도 크게 벌어지지 않았다.
결승골은 전반 막판 페드로 파스쿨리가 넣었다.
1-0.
아르헨티나는 8강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다음 상대가 잉글랜드였다.
1986년 월드컵 전체를 넘어 축구 역사에서도 가장 많이 다시 언급되는 경기 가운데 하나가 여기서 나왔다.
아스테카의 4분
1986년 6월 22일.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8강전은 아스테카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전반은 0-0이었다.
경기가 움직인 것은 후반 6분이었다.
마라도나가 잉글랜드 페널티 지역으로 파고든 뒤 공이 높게 떠올랐다. 골키퍼 피터 실턴이 공을 잡기 위해 뛰어올랐고 마라도나도 함께 점프했다.
공은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당시 심판진은 득점을 인정했지만 리플레이에서는 마라도나가 머리가 아니라 왼손으로 공을 건드린 것이 분명하게 보였다.
1-0.
VAR이 없던 시대였고 판정은 바뀌지 않았다.
경기 후 마라도나가 남긴 표현 때문에 이 골은 이후 ‘신의 손’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4분 뒤
첫 번째 골이 논쟁적인 장면으로 남았다면 두 번째 골은 정반대였다.
후반 10분.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 진영에서 엑토르 엔리케의 패스를 받았다.
골문까지는 약 60m가 남아 있었다.
마라도나는 공을 몰고 잉글랜드 진영으로 들어갔다. 피터 비어즐리와 피터 리드를 지나쳤고, 테리 부처와 테리 펜윅의 수비도 넘어섰다.
마지막에는 골키퍼 실턴까지 제쳤다.
슛.
2-0.
공을 받은 뒤 골문까지 도달하는 데 약 10초 정도가 걸렸다.
잉글랜드는 후반 막판 게리 리네커의 골로 한 점을 따라붙었지만 추가골은 나오지 않았다.
최종 스코어 2-1.
같은 선수가 불과 4분 사이에 축구 역사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기억되는 두 골을 넣은 경기였다.
첫 번째는 지금도 판정 논쟁의 대표 장면으로 남아 있고, 두 번째는 FIFA가 ‘세기의 골’로 부르는 장면 가운데 하나가 됐다.
벨기에전에서도 두 골
8강에서 모든 것을 쏟아낸 것처럼 보였지만 마라도나의 대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6월 25일 벨기에와 준결승을 치렀다.
전반은 0-0.
후반이 시작된 뒤 다시 마라도나가 등장했다.
후반 초반 수비 뒤 공간으로 들어가 골키퍼를 넘기는 슈팅으로 첫 골을 넣었다.
두 번째 골은 다시 개인 돌파였다.
마라도나가 중앙에서 공을 받은 뒤 벨기에 수비수 사이를 지나 페널티 지역으로 들어갔다. 마지막 수비까지 제친 뒤 왼발로 골문 구석을 찔렀다.
2-0.
잉글랜드전 두 골에 이어 벨기에전에서도 두 골.
아르헨티나는 결승에 올라갔다.
축구 역사와 주요 대회를 시대별로 보면 한 선수가 월드컵 토너먼트에서 경기 결과에 이렇게 직접적으로 관여한 사례가 얼마나 드문지 알 수 있다. 특히 8강과 4강에서 아르헨티나가 기록한 네 골은 모두 마라도나가 넣었다.
결승에서는 서독이 마라도나를 묶었다
6월 29일.
아스테카 스타디움에는 다시 마라도나가 들어섰다.
이번 상대 서독은 이전 팀들과 다른 방식으로 그를 막았다. 로타어 마테우스가 가까이 붙었고, 마라도나가 공을 잡을 때마다 빠르게 압박했다.
그래서 결승에서는 마라도나가 직접 골을 넣지 못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다른 선수들이 움직였다.
전반 23분 프리킥 상황.
호세 루이스 브라운이 서독 골문 앞으로 뛰어들었다.
헤더.
1-0.
아르헨티나가 먼저 앞섰다.
발다노가 만든 2-0
후반 11분 아르헨티나가 역습을 시작했다.
공은 호르헤 발다노에게 연결됐다.
발다노는 왼쪽에서 빠르게 전진했고 골키퍼 하랄트 슈마허가 나오는 것을 확인한 뒤 오른발로 슈팅했다.
골.
2-0.
남은 시간은 30분 이상이었지만 아르헨티나의 두 번째 월드컵 우승이 가까워지는 듯했다.
서독은 그대로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여기서부터 결승전이 다시 시작됐다.
코너킥 두 번으로 2-2
후반 29분.
서독이 코너킥을 얻었다.
공이 골문 앞으로 올라왔고 카를하인츠 루메니게가 밀어 넣었다.
2-1.
한 골 차.
그리고 후반 36분 다시 코너킥.
이번에는 루디 푈러가 헤더로 골을 넣었다.
2-2.
불과 7분 사이 두 골.
두 점 앞서던 아르헨티나의 리드가 사라졌다.
경기 분위기도 완전히 서독 쪽으로 넘어가는 듯했다.
남은 시간은 10분도 되지 않았다.
마라도나의 패스 한 번
동점이 된 뒤 서독 수비는 앞으로 조금 더 올라왔다.
그 순간 마라도나에게 공간이 생겼다.
후반 39분.
중앙에서 공을 받은 마라도나가 돌아서는 순간 호르헤 부루차가가 오른쪽 공간으로 뛰기 시작했다.
마라도나는 지체하지 않고 수비 뒤로 패스를 넣었다.
부루차가가 달렸다.
뒤에서는 한스페터 브리겔이 따라왔다.
골키퍼 슈마허도 앞으로 나왔다.
부루차가는 오른발로 공을 밀어 넣었다.
3-2.
아르헨티나가 다시 앞섰다.
결승전에서 마라도나가 기록한 가장 중요한 장면은 골이 아니라 이 패스였다.
두 번째 월드컵 우승
남은 시간 동안 서독은 다시 공격했지만 동점골은 나오지 않았다.
종료 휘슬.
아르헨티나 3-2 서독.
1978년 이후 8년 만의 월드컵 우승이었다.
선수들은 주장 마라도나를 들어 올렸고, 그는 아스테카 스타디움에서 월드컵 트로피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1986년 대회에서 마라도나는 5골을 기록했다.
잉글랜드와의 8강에서 두 골.
벨기에와의 준결승에서 두 골.
결승에서는 부루차가의 결승골을 만들었다.
대회 최고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골든볼도 그의 몫이었다.
아르헨티나의 일곱 경기
1986년 아르헨티나의 결과를 순서대로 보면 이렇다.
대한민국 3-1.
이탈리아 1-1.
불가리아 2-0.
우루과이 1-0.
잉글랜드 2-1.
벨기에 2-0.
서독 3-2.
7경기.
6승 1무.
단 한 번도 지지 않았다.
당시 주요 경기들은 스포츠 하이라이트로 다시 보면 대회가 왜 한 선수의 이름과 함께 기억되는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마라도나는 모든 경기에서 골을 넣은 것도 아니었고 결승에서도 득점하지 못했다.
그래도 중요한 순간마다 공은 결국 그의 쪽으로 향했다.
두 골 때문에 기억되는 대회, 일곱 경기로 완성된 우승
1986년 월드컵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을 두 개만 고르면 둘 다 잉글랜드전에서 나온다.
손으로 넣은 첫 번째 골.
수비진을 혼자 돌파한 두 번째 골.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우승은 그 경기 하나에서 끝나지 않았다.
벨기에전에서 마라도나가 다시 두 골을 넣었고, 서독과의 결승에서는 2-2가 된 뒤 부루차가에게 마지막 패스를 넣었다.
1986년 6월 29일.
아스테카 스타디움.
마지막 휘슬이 울린 뒤 마라도나는 동료들의 어깨 위에서 월드컵 트로피를 들었다.
아르헨티나의 두 번째 별.
그리고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은 이후 오랫동안 한 선수의 이름과 함께 불리게 됐다.
마라도나의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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